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단순한 복수극이겠거니 하고 틀었다가, 두 시간 반 동안 소파에 제대로 앉아 있지를 못했습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823년 미국 루이지애나 설원을 배경으로, 곰에게 처참히 공격당하고 동료에게 버림받은 한 남자가 죽음의 경계를 넘어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불편하고 잔인하지만, 그 안에서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자연광 촬영이라는 게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드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인공 조명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어벌래블 라이트(Available Light) 기법을 전면 채택했습니다. 어벌래블 라이트란 태양광, 달빛, 모닥불처럼 현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빛만을 사용하는 촬영 방식으로, 인공 조명 없이 자연 그 자체를 광원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직접 다시 돌려보면서 확인했는데, 텐트 안 장면에서 모닥불 하나만으로 배우의 얼굴이 담기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빛이 흔들리고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세트에서 라이트를 맞춰 찍은 장면과는 질감이 다릅니다. 눈 덮인 산맥 위 새벽빛, 강물에 반사되는 석양—이 모든 것이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일부처럼 화면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 영화는 롱테이크(Long Take) 방식을 전략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롱테이크란 편집 없이 카메라가 한 장면을 길게 이어서 촬영하는 기법으로, 관객이 장면의 흐름을 끊김 없이 경험하게 만드는 연출 방식입니다. 기습 전투 장면에서 카메라가 병사들 사이를 쉬지 않고 누비는 순간, 저는 스크린이 아니라 그 설원 한복판에 서 있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그건 편집의 힘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현실감이 주는 감각입니다. 루베즈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고, 이 방식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영화의 세계관 자체를 구현하는 선택이었음이 증명됐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제 경험상, 연기가 "훌륭하다"는 말이 이렇게 공허하게 느껴지는 배우는 드뭅니다.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서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신음, 눈빛, 손 떨림, 숨소리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은 솔직히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곰이 등을 물어뜯고 온몸을 내동댕이치는 그 장면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됐기 때문입니다. 진흙을 씹어 먹고, 얼어붙은 강에 몸을 던지고, 말의 내장을 들어내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 하룻밤을 버티는 장면들—그것이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실제로 그가 살아서 촬영을 마쳤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으로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다섯 번째 노미네이션 끝에 처음 받은 상이었습니다. 출처: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당시 시상식은 88회였으며, 디카프리오의 수상은 그해 가장 큰 화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수상은 단순히 "오래 기다린 결과"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 그가 몸으로 감내한 것들이 인정받은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피지컬 퍼포먼스(Physical Perform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대사나 표정보다 배우의 신체 전체를 통해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연기 방식을 뜻합니다.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몸 자체가 언어가 되는 연기—그것이 이 영화를 단순한 블록버스터와 구분짓는 지점입니다.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의 절반만 본 것입니다
처음엔 저도 단순히 "아들 잃은 아버지의 복수 이야기"로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 서사의 결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글래스가 설원을 기어가며 살아남는 이유는 존 피츠제럴드에 대한 분노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에 가깝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서바이벌 내러티브(Survival Narrative)를 단순한 액션 문법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서바이벌 내러티브란 극단적 생존 상황을 통해 인간 본성과 의지를 탐구하는 서사 구조를 뜻합니다. 글래스가 늑대가 잡은 사슴고기를 훔쳐 날것으로 씹어 먹을 때, 그리고 모르는 인디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상처를 치료받을 때—그 장면들은 복수와는 거리가 먼, 생과 사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이 저는 오히려 더 인상 깊었습니다. 피츠제럴드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대신, 글래스는 그를 리 족장에게 넘기는 선택을 합니다. 복수의 화신이 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단순한 응징이 아닌,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놓아버리는 장면—그것이 이 영화를 철학적 성찰로 올려놓는 지점입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불편했던 이유 두 가지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모든 분께 무조건 추천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 러닝타임 문제: 156분이라는 상영 시간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적입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생존의 고통이 주는 충격이 점차 익숙해지고, 비슷한 정서의 장면이 반복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구간이 생깁니다. 일부 장면을 과감히 덜어냈다면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악역의 단조로움: 톰 하디가 연기한 피츠제럴드는 탐욕스럽고 비겁한 인물이지만, 그 악함이 지나치게 일면적입니다. 왜 그가 그런 사람이 됐는지, 그의 내면에 어떤 균열이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부족합니다. 덕분에 글래스와의 대립이 인간 대 인간의 충돌보다는 선과 악의 도식적 구도에 머무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버드맨》으로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성이 있는데, 바로 미장센(Mise-en-scène)에 대한 집착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요소—배우의 위치, 조명, 의상, 배경—를 하나의 의미 단위로 연출하는 영화적 개념입니다. 《레버넌트》는 그 미장센이 자연 그 자체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독보적인 질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다만 그 집착이 때로는 러닝타임의 비대함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영화를 고를 때 "볼 만한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레버넌트》는 그 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주려다가 156분을 꽉꽉 눌러 담아버린 영화입니다. 불편하고 잔인하고, 중간에 지루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나면, 스크린 위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넷플릭스에서 지금 바로 볼 수 있으니, 두 시간 반을 온전히 비워둘 수 있는 날을 골라서 보시길 권합니다. 절대 배경음악 틀어놓고 흘려보는 영화가 아닙니다.